해인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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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종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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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해인도


해인사벽화

의상스님은 신라 제26대 진평왕 42년(A.D 620 315)에 왕실 김씨 한신공의 아들로 계림부(鷄林府)에서 출생하셨다.
출가전 스님의 이름을 일지(日芝)라 하는데 그것은 모친인 선나부인이 태몽에 「하늘에 해가 솟아오르고, 땅에는 쟁반만한 붉은 지초(芝草)가 빛나는 것을 보고」 일지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스님은 어려서 부터 총명하였으며, 또한 구도자적인 천성이 역연했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19세 되던 12월 아버지께 나아가서 「저는 이 세속에서 삶의 뜻을 잃었압고 불법가운데 새 길을 찾고져 하오나 막지마소서.」라고 말씀드려 출가를 허락 받았다.
황복사 안함법사를 찾아가서 예배하니 「장하다! 네가 능히 세간의 그물을 뚫고 나옴이여!」라고 찬탄했다.
황룡사 금강계단에서 수계한 후, 7년 선배인 원효스님과 함께 백제땅으로 구도의 길을 떠나 보덕화상(普德和尙)에게 열반경과 유마경 등을 수학하였다.
그리고 다시 경전을 보다 깊이 중국에 가서 연구하고자 그의 나이 26세때 원효스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가는 도중 원효스님은 해골물을 마신 기연으로 홀연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뜻을 요달하고 신라로 귀환하셨다.
그러나 의상스님은 이에 동요하지 않고 굳굳하게 홀로 구도의 길을 재촉하였다.

당나라 사신의 배에 의탁하여 양주(楊州)에 이르른 뒤 종남산 지상사, 지엄 화상의 문하에 이르르니 그의 나이 27세였다.
화엄종의 대조사이신 지염이 의상의 도착전날 꿈을 꾸니 신라로부터 한 큰 나뭇가지가 중국까지 뻗쳐, 그 가지 위에 봉황이 마니보주를 물고 있는데 빛이 널리 비치고 있었다. 꿈을 깬 뒤 지엽은 의상을 이렇게 맞이하였다.
「어젯밤 나의 꿈은 그대가 올 징조였소.」 지엄은 의상이 자기 제자 됨을 허락하시고 화엄의 깊은 뜻을 강설하시니 스승과 제자는 서로 깊은 신뢰와 보살핌으로 공부하여 몇 년이 지났다.
하루는 지엄화상이 의상을 보고 「그대가 지상사에 온지 벌써 4년, 화엄경을 읽어 그 대의를 대강 짐작했을 것이다. 「화염경」은 한 글귀 한 말씀도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한 해탈경계를 설한 것이며 여래의 구경일승의 법문이다.」
이와 같은 지엄화상의 말씀을 듣고 공부를 계속하여 8년, 더욱 깊은 경지에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화장세계관(華藏世界觀)이며 볍계관(法界觀)등의 관(觀)을 닦아 부사의한 해탈의 경계와 만법의 연기 실상을 궤뚫어 보았다.
이러한 관법을 통하여 불부사의(佛不思議) 경계를 사무쳐 본 뒤로는 「화엄경」에 대한 의심이 다 풀려지고 중중 무진한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도리가 거울속 그림자 모양 소연이 들어났다.
이렇게 「화염삼매」를 성취한 뒤 화엄경의 내용에 대한 확신이 생기어 화엄경의 대의를 한 그림으로 그리니 이것이 화염일승법계도(華嚴→乘法界圖)이다.
이 법계도는 법(法)과 불(佛)이 둘이 없고 부처와 중생, 마음이 다름없는 법계연기를 하나의 간단한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의상스님께서 다시 이 법계도를 설명하는 한 송을 지어 붙이니 이를 법계송 또는 법성게라 한다. 그 게송은
法性圓廳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總一切 證智所知非餘境.(생략)
법의 성품 원융하여 두 모습 본래 없고
모든 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네
이름 없고 모습 없어 온갖 것 끊겼으니
깨친 지혜 알 바요 다른 경계 아니로다.

의상은 이 법계송을 지은 뒤 이것이 「화엄경」의 진리에 부합한가 확인하고자 설에 불을 지르고 그 불옆에 서서 발원하였다.
「의상이 이제 화엄의 깊은 뜻을 이 30구 210자의 게송으로 표현하였사오니 이것이 노사나 부처님과 문수·보현 3대 성존의 뜻에 합하오면 이 글이 타는 불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을 것입니다.」
의상이 법계송을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의상은 이 법성게를 지엄화상에게 내보이니 지염화상은
「참으로 장하고 장하다! 30구 게송속에 화염경 큰 뜻이 다 담기었다. 이 게송만 외워도 화엄경을 읽은 공덕과 같을 것이니 널리 유전토록 하라.」
이와같이 화엄종의 제2조이신 지엄화상은 의상법사가 깨달으신 바를 증명하시니 스승과 제자의 할일이 이에서 다하였다.
스님께서는 당나라의 신라 침입설을 듣고 17년만에 급히 신라로 귀국하여 신라땅에 화엄의 거룩한 진리를 설하시니, 후세에 일연선사는 다음과 같이 찬하셨다.

가시나무 헤치고 바다 건너서 티끌먼지 무릅쓰고 도를 찾았네
종남산 지상사의 문에 들어가 지엄화상 가르침에 도를 깨닫고
화엄의 아름다운 진리의 꽃을 고국땅에 돌아와 심으셨으니
종남산과 태백산이 같은 봄이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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