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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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종찰 해인사

해인사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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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된 스님


해인사벽화

한산 습득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당나라 정관(貞觀:당 태종의 연호 627~649)년 간에 천태산 (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살았던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당시 국청사에는 풍간선사라는 도인이 계셨는데, 세상에서는 국청사에 숨어 산 세분의 성자라는 뜻에서 이들 세분을 국청삼은(團淸三隱)이라고 불렀다.
이 분들을 성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세분이 모두 불보살(佛菩薩)의 화현이기 때문이다.
즉 풍간스님은 아미타불의 후신이요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현이라 한다.

비록 이 세 분이 불보살의 화현이라고는 하지만 이 분들과 같이 살던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언행을 이해하지 못해 멸시하고 천대하기 일쑤였었다.
한산이란 이름은 국청사에서 좀 떨어진 한암(寒嚴)이란 굴속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늘 다 떨어진 옷에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때가 되면 국청사에 와서 대중들이 먹다 남은 밥이나 나물따위를 얻어먹곤 했다.
가끔씩 회랑을 천천히 거닐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소리를 지르거나 하늘을 쳐다보며 욕을 하곤 해서 절에 있는 스님들이 작대기를 들고 쫓으면 손벽을 치고 큰소리로 웃으며 가버리기도 했다.

습득은 풍간스님이 길을 가다가 강보에 쌓여 울고 있는 것을 주워다 길렀다고 해서 그 이름을 습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는 부엌에서 그릇을 씻거나 불을 때주는 일을 했는데 설거지를 하고 난 뒤 남은 밥이나 음식 찌꺼기를 모아 두었다가 한산이 오면 내주곤 했다.
한번은 주지스님이 출타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산아래 목장을 지나는데 한산 습득이 소떼와 더불어 수작하고 있음이 보였다.
먼저 한산이 소떼를 향하여 「이 도반들아 소생활 맛이 어떤가? 시주밥을 먹고 놀더니 기어코 이 모양이 되었구나.」 하더니
「오늘은 여러 도반들과 함께 무상법문을 나눌까해서 왔으니 내가 호명하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라. 첫번째로 동화사 경진율사.」하고 호명하니
검은 소 한마리가 ‘음매-에’ 하고 한산 습득의 앞으로 나오더니 앞발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는 한산이 지적한 장소로 가는 것이었다.

「다음 천관사 형지법사.」 이번에는 누런소가 또 ‘음매-에’ 하고 대답하더니 절을 하고는 첫번째 소가 간 곳으로 걸어가는게 아닌가.
이렇게 하기를 30여회. 백여마리의 소떼중에 30마리는 스님들의 후신이다. 말하자면 시주밥 먹고 공부 않은 과보호 빚을 갚기 위해 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지스님이 모골이 송연하여 쫓기듯 절로 올라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한산 습득이 미치광이 인줄 알았더니 성인의 화신이 분명하다」
일찌기 여구륜(閒丘亂)이라는 벼슬아치가 이 고을의 자사로 부임했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었다. 그런데 이 병이 무슨 병인지 좋은 약, 용한 의원이 모두 소용없는 이른바 백약이 무효였다.

이를 안 풍간스님이 찾아가 뵙기를 청하자, 여구륜은 자기의 병세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는 풍간스님이 깨끗한 그릇에 물을 받아 주문을 외면서 그에게 뿌리자 언제 아팠더냐 싶게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자사가 크게 사례하고 설법해 주기를 청하자 풍간스님은 굳이 사양하며 「나 보다는 문수, 보현께 물어 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두 보살께서는 어디에 계시온지 ?」
「국청사에서 불 때 주고 그릇 씻는 이들이 그들입니다.」라고 거듭 묻는 말에 대답하고는 유유히 사라져 가 버렸다.
이에 자사가 예물을 갖춰 국청사로 한산과 습득을 찾아 갔다. 마침 한산과 습득은 화로를 끼고 앉아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가까이 간 자사가 절을 올리자 무턱대고 꾸짖는 것이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스님이 깜짝 놀라며
「대관(大官)께서 어찌 미치광이들에게 절을 하십니까?」
하고 말하자 한산이 자사의 손을 잡고 웃으며
「풍간이 실없는 소리를 지껄였군. 풍간이 아미타불인줄 모르고 우릴 찾으면 뭘하나?」라는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선 뒤에는 다시 절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여구륜이 못내 아쉬워 옷과 약등의 예물을 갖추어 한암굴로 다시 찾아 갔다.
예배를 올리고 말씀을 기다리는데 「도적놈아! 도적놈아!」 라는 말을 남기고 한산 습득이 굴속으로 들어가자 돌문이 저절로 닫히는 것이었다.
이윽고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각각 노력하라.」라는 말이 들리고는 돌문은 완전히 닫혀져 버렸다.

여구륜은 성인을 친견하고도 더 법문을 듣지 못한 것을 섭섭히 여기며, 숲속의 나뭇잎이나 석벽, 혹은 촌락의 벽등에 써놓은 세분의 시(詩) 약 300수를 모아 책을 엮었다.
이 시집을 삼은집(三隨集)이라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한산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전해오고 있다.
(해인사 약수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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