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 유산 전승이라는
보편적 가치 공유가
‘해인사역’이 갖는 상징성
국가지정 문화재며
국립공원으로 공공이익 위해
수행 도량 기능과
종교 활동 수많은 제약 감내
국민 편익과 해인사 보편 가치
공유할 역 선정서
해인사의 역사성 문화적 가치
과소평가하는 모순
‘해인사역’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가치를 잇는 이정표이다. ‘해인사역’은 단순히 수많은 역사(驛舍)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삶을 이어온 선조들과 현재의 우리들, 그리고 미래세대를 연결하는 지혜와 통합의 상징이자 증거가 될 것이다. 또한 ‘해인사역’은 전 국민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경남 거제와 경북 김천을 잇는 남부내륙고속철도 노선 및 역사 선정에 관련한 <전략환경영향평가(초안)>를 공고했다. 기대와는 달리, 국토교통부는 합천군을 경유하는 지역에 ‘해인사역’선정을 배제했다. 정부 평가서 초안대로라면, ‘해인사역(합천군 야로면 일대)’은 김천~거제를 잇는 직선 노선 중간에 위치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곡선 우회로의 필요성이나 예산증가요인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정부는 지난 2019년부터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균형발전이란 단순히 물리적 행정구역에 따른 사회간접자본의 배분과 할당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단순히 계량적인 거리 중심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평가서 초안에서 이러한 고심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해인사역’이 상징하는 것은 국난 극복의 역사성과 민족문화 유산 전승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공유다. 해인사는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가야산은 산 자체가 ‘국가지정문화재’이면서 ‘가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해인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수행도량이라는 본래의 기능과 여타 종교 활동에 있어서 수많은 제약을 애써 감내해왔다.
정부는 해인사를 향해 의무를 부과하거나 규제를 가하는 과정에서는 해인사의 역사적 의미나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보다 나은 국민 편익과 해인사가 지닌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철도역 선정 절차에서 해인사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전후 모순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지역 한 곳을 정책적 오판에 의해 누락시킨 문제가 아니라, 해인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온 선조들의 의지와 국민 통합의 상징, 더 나아가 세계 인류가 공감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외면이자 몰이해이다.
과거 1992년 착공된 경부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대구 부산 구간을 직행하지 않고 경주역을 거쳐 돌아가게 설계한 것도 불국사와 석굴암 등 경주의 문화유산을 고려한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최소한 그 정도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는 있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류를 자랑하는 문화 대국이자 세계 경제 규모(GDP) 순위 9위인 경제 대국 대한민국에서, 정부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태도와 안목은 가히 퇴행적이라고 할 만하다.
단순히 정치나 경제 논리만으로 이 거대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기만이자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해인사역’은 존재 그 자체로 현세대가 종교와 지역을 초월해서 어떤 가치를 중시했고, 지향하고자 했는지에 대한 선언이자 이정표의 정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필자는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대행. 해인사 승가대학 졸업, 서울대 철학과 박사수료, 중국과 한국불교 사상 교류 연구와 불교와 인공지능 철학적 의미 탐구에 관한 저술 논문 활발.
[불교신문3648호/2021년1월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