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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말후일구(末後一句)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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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06-07-06 17:08 조회24,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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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말후일구(末後一句)는 무엇인가


               


                          


올올저두탁발귀 兀兀低頭托鉢歸하니


방관쟁면소희희 傍觀爭免笑嘻嘻리오


조지불요명종고 早知不要鳴鐘鼓인데


일등교이차인기 一等敎伊且忍饑하라




혼자서 고개 숙여 발우를 든 채 돌아가니


곁에서 보는 이가 어찌 비웃음을 참으랴.


일찍이 종과 북을 두드릴 일이 없을 줄 알았다면


그에게 배고픔을 참도록 하는 것이 제일일세.




덕산스님이 어느 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발우를 들고서 법당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공양주 소임을 살고 있던 설봉스님은 이 광경을 보고서 말했습니다.


“저 늙은이가 종도 치지 않고 북도 두드리지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서 곧장 방장실로 되돌아갔습니다.


설봉스님과 함께 살던 암두스님은 이 일을 전해 듣고서 또 한마디를 보태는 것이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덕산이 말 후구末後句도 모르는구나.”


그러자 덕산스님은 그 말을 듣고서 암두스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대가 노승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암두스님은 은밀히 자신의 뜻을 덕산스님에게 열어 보였습니다.


이튿날 덕산스님은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의 법문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러자 암두가 큰방 앞에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노장이 이제 겨우 말 후구를 알게 되었구나. 이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  




예로부터 ‘조사祖師중의 조사’라고 한다면 임제와 덕산 두 선사를 거론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종문의 구성원 모두가 인정하는 대선지식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두 선사는 실로 천고千古의 안목眼目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중 덕산 선사 밑에서 두 사람의 큰 인물이 나왔으니 바로 암두와 설봉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이 주고받은 높고 깊은 법문인 ‘덕산탁발화德山托鉢話’의 주인공들입니다.




이 공안은 얼마나 어려운지 중국의 천하총림에서도 논란이 분분했던 법문입니다. 이는 어지간한 선지식은 동문서답을 하기 마련인 참으로 만만찮은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덕산탁발화는 천하가 인정하는 명안종사明眼宗師라야 거량을 했지 소견이 얕은 이들은 감히 입조차 대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해동에도 신라 말 도의국사의 구산선문 이래 선종이 뿌리 내린지 천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근세이전까지는 이 법문을 대중에게 내보인 이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근세에 와서 성철노사 향곡선사가 대중에게 거량하신 것을 이 산승이 말석에 앉아서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러니 이 법문이 얼마나 고준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것입니다.




이 공안은 설봉의 한마디에 덕산이 고개를 숙이고 얼른 방장실로 되돌아갔다고 한 부분도 참구해야 할 대목입니다. 암두가 은밀히 그 뜻을 사뢰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씀드렸는지 그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덕산이 가만히 물러갔다고 하였는데, 가히 서로 만나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서로 알아차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산이 다음날 상당하여 내린 법문이 그 이전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는 잘못으로서 잘못을 보태는 격이라고 할 것입니다. 암두가 승당 앞까지 내려와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이르되, “저 노장이 말 후구를 알아서 다행이다. 뒷날 천하 사람이 아무도 그를 대적하지 못하리라”고 한 것은 결코 후학들을 덮어 누르는 말로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삼년뿐이로다”라고 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3년 후에 덕산스님은 입적했습니다.




삼년 전이라면 덕산은 81세요, 설봉은 41세이며 암두는 35세가 됩니다. 설봉과 암두의 사제지간에서 일어난 선문답은 제일 우직한 설봉에게 불법의 궁극적인 깨달음을 이루도록 제시한 한마디의 법문, 최종적인 불법의 말후일구를 깨닫게 하기 위한 덕산과 암두의 방편적 대화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암두는 뒷날 설봉을 회고하면서 “설봉은 나와 함께 똑같은 경지에서 살았지만, 나와 똑같이 죽지는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말 후구를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설봉은 암두보다도 6살 위이지만 깨달음은 암두의 제시提示로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봉이 깨닫게 된 기연을 ‘오산성도鰲山成道’라고 합니다.


덕산 입적 후에 설봉 암두 흠산欽山 셋이서 행각할 때 일입니다. 호남성 예주 오산진에서 악천후로 인하여 길이 끊어지면서 어느 민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흠산과 암두는 잠을 자고 있었지만 설봉은 한결같이 철야 좌선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던  암두가 한 마디씩 던져가며 설봉의 공부경지를 점검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암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종문입자 불시가진從門入者 不是家珍’ 즉 문으로 들어온 것은 참된 집안의 보물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만약 불법을 크게 드날리려고 한다면 지금까지 배운 모든 불법을 하나하나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돼.”


설봉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는 암두에게 절을 올렸습니다.  




설봉은 구도행각을 통하여 많은 선지식을 참문한 납자로서도 유명합니다. 일찍이 세 번이나 투자산 대동선사를 참방하였고 아홉 번이나 동산양개화상을 참문하면서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를 흔히 삼도투자 구지동산三到投子 九至洞山이라고 뒷사람들은 말합니다. 뒷날 덕산문하에서 수학하여 결국 덕산의 법을 잇게 됩니다. 덕산의 문하에서 설봉은 공양주로서 항상 주걱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해우소 등 후미지거나 궂은 곳의 청소를 하면서 덕과 복을 쌓아가는 수행자이기도 했습니다.




덕산탁발德山托鉢 공안에는 4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덕산선사가 제자 설봉스님의 말 한 마디에 고개를 푹 숙이고 방장실로 되돌아간 부분입니다.


정말로 대답할 능력이 없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까?       


둘째, 덕산선사가 과연 말 후구를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말 후구를 모르고서 어떻게 당대의 대선지식이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의문입니다.


셋째, 암두스님이 은밀히 자신의 견처를 내보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입니까?


넷째,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말 후구를 알았다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제자인 암두스님이 스승인 덕산스님보다 안목이 더 나았다는 것입니까?




따라서 이 공안은 이렇게 말하거나 저렇게 말하거나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이 독약과 같아서 상신실명喪身失命할 것이니 부질없는 알음알이로 소견을 달아 조사의 참뜻을 묻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량분별인 유심有心경계는 고사하고 허통공적虛通空寂한 무심無心의 깊은 곳에서도 그 참뜻을 알아차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직 최후의 굳센 관문을 쳐부수고 확철히 크게 깨쳐야만 비로소 고인의 입각처立脚處를 제대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공안을 제대로 바로 알기만 한다면 모든 부처님과 조사의 일체공안을 일시에 다 타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출격장부가 되어 금강보검을 높이 들고서 천하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며 살활자재殺活自在할 것이니 이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결제대중들이여!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보니 최초의 일구를 안다면 최후의 일구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최후의 일구나 최초의 일구 모두 궁극적인 일구 즉 말 후구는 아닙니다.  이 공안을 제방에서 흔히들 여러 가지로 논해왔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선 일체 묻지 않겠습니다.  덕산 삼부자가 주고받은 그 말 후구가 과연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참으로 그 말 후구인가 하는 것을 이번 하안거 결제 한철동안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각월중계 斫却月中桂하니


청광전갱다 淸光轉更多로다


호리구병적 狐狸俱屛迹하고


사자분금모 獅子奮金毛로다




달 속의 계수나무 베어내니


밝은 빛이 더욱 많아짐이로다.


여우와 살쾡이는 자취를 감추고


사자는 황금털을 뽐내는구나




2550(2006) 하안거 결제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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