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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사물(佛殿四物)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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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06-09-07 14:34 조회2,3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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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전사물(佛殿四物)에 대해....






 불이문(不二門)을 통해 사찰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범종각이다. 범종각은 법당쪽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에 있는가? 그것은 불교의 체용설에 입각하여 볼 때 왼쪽은 체(體)에 오른쪽은 용(用)에 해당 하는데, 소리는 곧 용에 속하기 때문이다. 체, 그것은 본질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용은 작용이다. 항상 체에 근거하여 다양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범종각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곧 우리들 일신의 작용이요 부처님의 위대한 작용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소리는 스스로를 맑히고 중생을 교화하는 크나큰 울림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범종각은 법당쪽에서 볼 때 오른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범종각에 때로는 범종만이 홀로 있기도 하지만, 규모있는 사찰에서는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등이 범종과 합하여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는 이름아래 배치되기도 한다.


 이제 그 불전사물의 하나하나에 깃든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 순서를 조석 예불(朝夕禮彿) 때 치는 차례에 따라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의 순으로 나열한다.




 [법고(法鼓)]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즉 북소리가 세간에 널리 울려퍼지듯이 불법(佛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물려 '일심을 깨우친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불경 속엔느 실로 여러 가지 종류의 북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는 북은 홍고(弘鼓, 大鼓라고도 한다.)와 소고로 나누어진다. 홍고는 범종과 같이 법종각에 두고 조석예불 때 치게 되며, 소고는 염불 의식 때에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 전통 예술의 하나인 승무(僧舞)에는 소고가 필수적으로 등장하여 승부를 더욱 장중한 분위기 속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법고의 몸통은 잘 건조된 나무로 구성하고,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양면은 소의 가죽을 사용한다. 특히 이 양면에는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각각 부착하여야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한여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북의 몸체 부분에는 보통 용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며, 두드리는 부분의 가운데에는, '만(卍)를 태극모양으로 둥글게 그리기도 하고 진언(眞言)을 적어 넣기도 한다.


 왜 암수소의 가죽을 양면으로 대는 것일까 바로 이것이 음양의 조화이다. 음으로만 이루어지거나 양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소리, 화합의 소리, 조화의 소리야말로 중생의 심금을 울리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상징성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소가죽을 댄 법고는 축생(畜生)의 제도를 위하여 친다고 한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 법고는 예불 시간에 가장 먼저 울려 퍼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된 두개의 북채로 마음 '심(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운판(雲板)]




 사물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운판이다. 청동 또는 철로서 구름무늬 모양의 넓은 판을 만들고, 판위에 보살상이나 '옴마니반메홈'등의 진언을 새기기도 하며, 가장자리로는 두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듯 호위하는 듯한 모습을 조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구름과 달을 새기는 경우도 있어 '운판'이라 하게 된 것이다.


 운판이 인도에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의 선종(禪宗) 사찰에서는 부엌이나 제당(薺堂)에 달아 놓고 대중에게 끼니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한다. 이를 구름 모양으로 만든 것도 화재를 막고자 함이었다. 즉 수(水), 화(火) 상극(相剋)의 오행(五行)의 원리에 입각한 주술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엌에서는 밥이나 죽이 끓을 때 세번을 치므로 '화판(火板)'이라고도 하였고, 끼니때를 알리는 경우에는 여러 번 길게 치므로 '장판(長板)' 이라고도 불렀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시대에는 부엌에서 운판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차츰 불전사물의 하나로 의식 용구가 되었다.


 즉, 운판이 울리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메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薦度)할 수 있다고 한다.






  [목어(木魚)]




  나무로 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서 걸어 두드리는 목어는 어고(魚鼓), 목어고(木魚鼓), 어판(魚板)이라고도 한다. 물고기의 배부분을 파내고 배부분의 양벽을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내게 하는 이 목어는 중국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유래는 가히 전설적이다.


  "옛날 어느절에 덕 높은 스님이 제자 몇 사람을 가르치며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힘써 도를 닦았으나, 유독 한 제자만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생활할 뿐 아니라 계율에 어긋나는 속된 짓을 저지르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마침내 몹쓸병에 걸려 일찍 죽고 만 그 승려는 곧바로 물고기의 과보를 받아 태어났다. 그것도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난 물고기가 되어 헤엄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서 피를 흘리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루는 그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난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이대고 슬피우는 것이었다. 스승이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 물고기의 전생을 살펴보니, 그 물고기가 바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병들어 죽은 자신의 제자였다. 가여운 생각이 든 스승은 곧 그 제자를 위하여 수륙제(水陸薺: 물이나 육지에 사는 미물과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는 법회)를 베풀어서 불고기의 몸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날밤 스승의 꿈에 나타난 제자는 감사와 서원(誓願)을 밝혔다.


  '스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 다음 생에는 참으로 발심(發心)하여 열심히 정진하겠나이다. 바라옵건데 스님, 저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저와 같이 생긴 물고기를 만들어서 나무막대로 쳐주십시요, 그리고 저의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수행하는 사람들에겐 제 이야기가 좋은 교훈이 될 것이요, 강이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그 소리를 들으면 해탈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될 것입니다.'


  스승은 그 부탁에 따라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딴 목어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하였다."


  중국 및 우리나라의 선종(禪宗)에서 사찰 규범의 지침서로 삼았던 <<백장청규(百丈淸規)>>에 의하면,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그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침(어둡고 혼미한 정신 상태)을 경책(警策)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현재에는 새벽과 저녁 예불과 큰 행사가 있을 때 이 목어를 두드려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까지를 포함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식당이나 창고 등에 걸어두고 오로지 대중을 모으는 데만 사용하였다고 하나. 즉, 길게 두 번을 두드려서 대중에게 끼니때를 알리고, 한 번 길게 두드려서 대중을 모으는 데만 사용하던 것이 뒷날 독경이나 의식에 쓰는 법구(法具)로 용도가 바뀌게 된 것이다.


  또한 그 형태도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츰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로 변형되어 갔고, 입에 영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을 많이 취하게 되었다.


  용두어신과 여의주! 그 속에는 동양의 깊은 철리(哲理)가 만들어낸 대정환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용두어신은 불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을 뜻한다. 어변성룡은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應傳>의 등용문(登龍門)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삼고 있다. 즉, 도화꽃이 필 무렵 황하(黃河)의 잉어들은 센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서 상류의 협곡에 있는 용문(龍門)으로 다투어 오르는데, 그곳을 넘어서면 용이 된다는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면학에 힘쓰는 선비가 온갖 고초를 겪은 뒤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물가(佛家)또한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어변성룡과 용두어신은 등용문이 아니라 깨달음[覺]을 상징한다는 점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고기라는 중생[Sattva]이 용이라는 깨달은[Bodhi] 중생[Sattva] 즉 보살[菩薩, Bodhisattva]이 됨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목어를 울리는 뜻은 보살이 되라는데 있다.






  [범종(梵鍾)]




  옛날 인도에는 '건치(健稚)'라고 하는 악기가 있었다. <<증일아함경>> 제14에 의하면 석가모니 제자 중에서 가장 설법을 많이들은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阿難)이 강당에 올라가 건치를 치면서 외쳤다


  "이제 부처님의 신고(信鼓)를 치노니, 불제자들이여 모두 모이시요. 번뇌를 끊고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이 묘한 소리를 들으려면, 내가 건치를 치노니 모두 모이시요"


  부처님의 설법과 관련하여 사람들을 모을 때 아난이 친 건치는 그 뒤 인도의 불교교단에서 사람을 한 곳에 모을때 널리 사용되었다.


  이건치가 오늘날의 종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그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아 분명한 생김새를 알 수 없다.


  중국에서는 은(殷)과 주(周)나라에 종이 있었고, 춘추 전국시대에는 타원형이나 둥근모양의 동탁(銅鐸)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청동기시대부터 동탁이나 풍탁(風鐸)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와 같이 쇠소리를 내는 작은 금속 악기들이 크게 변형되어 만들어진 것이 범종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범종이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것은 660년에 소정방이 부여 정림사(定林寺)에서 읊은 시 속에 '더응덩 더응덩 종소리 울리는 밤, 맑은 범패소리는 새벽바람에 실려온다'는 구절이 있어 이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종은 8세기 이후의 통일신라시대부터이다. 그 빼어난 소리에 걸맞게 크고 우람하면서도 날씬한 몸매, 알맞는 공간 구성과 아름다운 갖가지 문양들, 마음껏 쇠를 다루는 솜씨등을 펼쳐 우리나라종의 기틀을 이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한국종'이라는 학명을 얻게 되쓴. 현존하는 신라종으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상원사종(725년, 국보36호)을 비롯하여 에밀레종으로도 불리어지는 성덕대왕신종(771년, 국보 29호), 6,25때 불타버린 선림원종(804년), 비천상 부분만 남아있는 실상사종(8세기말), 공주박물관에 있는 9세기 종과 일본에 가 있는 5점 등, 모두 11점이 남아 있다.


  28번의 타종(打鐘), 욕계(欲界)의 6천(天)과 색계의 18천과 무색계의 4천, 합쳐서 28천의 모든 하늘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며 "더응덩--긴여운을 남기면서 멀리 멀리 퍼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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