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법인(三法印) > 생활속의 불교

본문 바로가기


법보종찰 해인사

생활속의 불교

3법인(三法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06-09-07 14:33 조회3,569회 댓글0건

본문

 

 


3법인(三法印)


 


 


    법인(法印: dharma mudra)이란 '법의 표지'(標識)라는 말이다. 3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가장 단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깃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불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과 구별하기위해 하나의 기준이 된다. 3법인과 일치하는 사상이면 불교이고 그 반대이면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형식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무상과 무아의 개념 속에  논리적으로 고(苦)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형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1.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諸行: sarva samskara)에서, 제(諸, sarva)는 '일체' 또는 '모든'의 뜻이다. 그리고 행(行) 즉 samskara는 '함께'라는 의미의 접두사 sam과 '하다, 만들다'라는 의미의 동사 KR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서, '만들어 진 것'[爲作]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제행이란 '일체의 만들어진 것', 다시 말하면,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모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무상은 anitya를 번역한 말로서, nitya 즉, '항상'(恒常)의 반대 의미이다. 무상이란 글자 그대로 "항상함이 없다",  "변화하고 변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제행무상'이란 "모든 존재는 항상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존재하는 그대로의 자연계와 인간계를 볼 때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바뀌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산이나 바위 같은 것들은 불변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시도 쉬지 않고 변하고 있다. 자연도 인간도, 그리고 물질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단 한 순간도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존재란 여러 요소들이 여러가지 조건에 의하여 모여있는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조건들이 변하거나 사라지면 존재 역시 변하거나 사라진다. 그런데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존재도 무상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행무상이라는  설명은  현대 과학에서 하고 있는 주장과 같다.  물질은 겉으로 보기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에너지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해서 전자(電子)와 중간자(中間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운동체이다. 이와 같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물질 역시 고정 불변한 것일 수는 없다. 무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상이라는 말은 "인생은 무상하다." 또는 "세월은 무상한 것이다."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수가 많다. 무상하기 때문에 살아 가는 것이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무상한 것은 고다" 라고 되풀이 해서 말하고 있다. 젊은 사람이 늙어가고 건강한 사람이 병들기도 하고, 부귀를 누리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그것을 잃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들은 괴로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갈 수가 있다. 변하기 때문에 아이가 어른이 되고 병든 사람이 건강을 되찾는다.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도 무상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되기도 하고,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 부귀를 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제행이 무상하다.'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에 대한 객관적 관찰에 의해서 내려진 결론이다. 이것은 값싼 감상주의나 비관적인 현실관이 아니다. 제행무상인은 불교가 모든 존재를 보는 관점이므로 불교의 존재관(存在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법(諸法: sarva dharma)이란 제행(諸行)과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때로는 '제법'과 '제행'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 2개의 말은 다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제행'에서 '행'은 'samskara'이고  '제법' 에서 '법'은 'dharma'이다. 제법은 제행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아(無我:anatman)라는 말은 "아(我)가 없다." 또는 "아(我)가 아니다."[非我]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我,atman)란 생멸변화를 벗어난 영원하고 불멸적인 존재인 실체(實體) 또는 본체(本體)를 말한다. 따라서 '제법무아'는 "모든 존재에는 고정불변 하는 실체적인 아(我)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역시 그것은 "실체적인 아[實體的我]가 아니다." 라는 뜻이기도 하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지만,"제법이 무아(無我)하다."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와 반대다. 눈에 보이는 현상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쉬워도 존재의 배후에 영혼과 같은 실체적인 존재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붓다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불교 이외의 다른 종파에서는 대부분 불생불멸의 영원한 존재로서의 본체를 인정하고 있다. 그것을 '아'(我: atman)' 또는 '범'(梵: brahman)이라 하기도 하고, '영혼'[生存原理: jiva], 절대자, 신이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이것은 개체적인 실체[我]를 가리키기도 하고  우주적인 실체[梵]를 말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실체적인 존재를 인정 할 수가 없다. 모든 존재[諸法]는 비실체적인 여러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존재가 무아적일 것은 물론이고, 역시 그 속에 고정불변한 실체적인 아(我)가 없다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제법무아라고 해서 현상적인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정하고 있는 것은 단지 '고정불변하는 실체적인 아(我)'일 뿐이다. 제법무아인은 불교의 실체관(實體觀)이라고 할 수있다. '고정불변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관점이다. 제법무아 이론은 불교만이 가르치고 있는 가장 독특한 것이다.




 


3.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열반'과 '적정(寂靜; santi)'은 동의어로서, 열반의 의미가 바로 '적정'이다. 열반에 대해서는 4성제의 멸성제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좀더 부연한다면, 열반이란 'nirvana'의 음역으로서 글자 그대로는 소멸(消滅)을 의미한다. 그것은 '불어서 끄다'[吹消]라는 뜻을 가진 어근 'VA'에다 부정접두사 'nir'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말로서 '불어서 꺼진 상태'를 뜻한다. 즉 "불타고 있는 것과 같은 괴로움[苦]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초기 경전에서는 열반을 "탐욕의 사라짐[貪慾滅盡], 분노의 사라짐[瞋 滅盡],  어리석음의 사라짐[愚痴滅盡],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생에서  괴로움을 일으키는 요소들인 탐욕심, 분노심, 어리석음[3毒]이 모두 소멸되었을 때 인생은 더 이상 괴로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열반의 상태는 '고요하고, 괴로움이 없이 편안[無苦安穩]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santi' , 즉 '적정(寂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열반의 이와같은 상태를 한 경에서는 비유해서 "마치 마른 나뭇단을 많이 넣고 매우 뜨겁게 달군 큰 가마에서 불타고 있던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거기에서 벗어나 시원한 장소로 도망쳐 나왔을 때, 그가 느끼는 최상의 안락과 같은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경전에서는 열반이란 말을 멸(滅), 적(寂), 불사(不死), 최상의 안락(安樂)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현대적인 표현으로 하면 "최고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다. 모든 고(苦), 번뇌가 소멸된 상태는 바로 행복이기 때문이다. 열반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이자 최고의 이상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이 열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열반적정인은 불교의 이상관(理想觀)이라고 할 수 있다..   3법인은 각 법인(法印)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결된 하나의 실천이론으로 볼 수도 있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바로 이해 하면 제법이 '무아' 하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하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면 우리는 욕망과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된다. 그리고 모든 욕망과 번뇌를 떠날 때 우리는 열반에 이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TEL : 055-934-3000     FAX : 055-934-3010
Copyright 2015 HAEINS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