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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이해

고구려 불교사 - 강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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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06-09-07 14:50 조회1,5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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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佛敎가 들어 왔다고 하는 것이 372年 으로 高句麗 소수림王때 이지만 그것은  공식으로 전해진 것이고 그 이전에 이미 佛敎가 들어와 있었다. 그근거로는中國에  어느 道人이 高句麗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데 그것을  볼 적에 스님이 나올 정도로 佛敎信仰이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스님이 나올 정도면 佛敎信仰이 대단히 융성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法興王때 新羅에 佛敎가 公認 되었지만 그보다 약 100年 이상 전에 佛敎가  新羅에 들어  왔으며 法興王때에는 한 사람의 승려도 배출되지 않았으며 眞興王때에야 비로소 승려가  한 두 명씩 배출되기 시작했음을 상기하면 쉽게 알 수 있다.


   高句麗의 祭天行事가 흉노족이 했던 祭天行事인 同盟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중앙  아시아의 영향이 있었고 중앙 아시아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면 佛敎는 좀 더 일찍  들어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三韓이라든가 夫餘등 部族國家 시대의 信仰 모습이 솟대라고 하는 聖域 또는 소도라고 하는 말 등이 stupa를 中國에서는 소도라고 했으니까 이것은 stupa가  變形 發展하여 솟대가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실제로 伽耶 地方인 陽傘에 있는 옛  古墳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 곳에는 솟대를 세운 자리가 墓의 앞에 있는 것도 있고  양쪽에 세운 흔적도 있다. 이는 塔을 法堂 앞에 세우는 식과 양옆에 세우는 식을 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그 이외에도 佛敎的이라 보여지는 것이 대단히 많았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 佛敎가 들어와 있었으며 더군다나 伽耶의 佛敎같은 경우  金海에 가보면 佛敎的인 냄새가 많이 난다. 더구나 이름도 伽耶이다.


  伽耶라고 하는 이름은 어떤 意味를 가지고 있느냐? 印度에서는 gayea라고 하는데가  있는데 이곳이 어떤곳이냐 하면 부처님이 성도한 곳을 말한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이후 budda gayea로 이름이 바뀌었고 요즘은 bodde gayea로 바뀌었는데 bodde gayea나  budda gayea나 같은 뜻이다. 그러면 이 伽耶가 gayea라는 말로 표현되었다고 한다면  開國 당시부터 佛敎的인 냄새가 나지 않느냐. 金首露王의 王陵이나 許皇后의 陵등에  印度的인 냄새가 나는 곳이 많이 있다. 太陽의 文樣이라든가, 혹은 뱀에 대한 信仰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韓國에서 그 당시 없었던 내용들이다. 그 후 土俗的인 것들이 加味되어 變形되기는 했지만 伽耶에 佛敎가 들어온 것이 1世紀 경이라고 한다면 엄청나게 빨리 佛敎가 들어온 것이 되어버린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것들은 지금 밝힐래야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되어 버렸지만  韓半島에 佛敎가 들어온 것은 대단히 일찍 들어 왔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러면 高句麗에는 어떤 佛敎가 들어 왔는가?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高句麗에 佛敎가 들어 왔을 때는 高句麗 小獸林王 2년 그 당시의 中國의  狀況은 三國志에 나오는 유비 장비 관우등이 活躍하던 위, 촉, 오의 三國이 다투던 三國時代에 위나라가 統一 하는가 싶더니 위나라의 제상이었던 사마염이 조조의 아들 조비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어 中國을 統一하게 되는데 이를 晉나라라고 하며 이 晉나라가  서자 漢族이 아닌 다른 민족들이 북쪽에 많은 국가들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이 晉나라를 밀어낸다. 진나라는 동쪽으로 밀렸다가 다시 서쪽으로 밀리게 되는데 이를 東晉이라 한다.


  이 시대가 5호 16국 시대인데 그중 가장 힘을 발휘하였던 나라가 東晉이다. 이 동진의 왕 부견이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다. 


  동진의 王 부견이 있을 당시의 불교상황은 이당시 사람이 불교를 받아 들일 때 불교를 받아들이면 부처라고 하는 신은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를 지켜준다고 해서 불교를 받아 들였고 또 불교가 한족의 신이 아니라고 하는 데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한족이 오랑캐라고 여기는 민족인 한족이 아닌 타민족의 종교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식으로 불교는 퍼져 나갔고 또 이당시에 활약했던 승려들은 대부분이 밀교적인 활동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신이, 이적 기적같은 것들을 드러내었다. 또 아주 훌륭한 스님이 나타나면 그 스님은 부처의 대접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부처의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큰 나라에서는 그 스님을 모시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킬 정도 였다. 전진에서도 전진의왕 부견이 불교를 좋아해서 좋은 승려를 모시려고 했는데  그당시 북양에 도안이라고 하는 스님이 유명했었다. 이 도안스님을 모시고 오기  위하여 대군을 일으켜 도안스님을 모셔 온 것이 391년이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370년대이므로 도안스님이 전진에 가기전의 전진의 불교가 전해진 것이다. 그 불교가 어떤 불교였는가하면 소수림왕이후 국양왕 광개토왕의로 이어지는데 광개토왕 당시 큰 절을 9개지어 부처를 숭상하고 복을구하라고 한 기록이 있다. 그 이후 오랬동안 불교에 대한 기록이 없다가 마지막으로 보덕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단한 승려였었는데 이 사람이 방장을 백제땅으로 옮겻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불교가 고구려땅에서 쫒겨 났다는 말이다.   


  고구려에서의 불교는 보덕이 쫒겨남으로 없어지고 그 대신에 도교가 일어났다. 도교사상이 중심이 되어 고구려의 지배사상을 지배하게 되고 그 이후 결국은 고구려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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